칼럼과 수다/의학적 수다 2013/04/15 13:16 Written by 슬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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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알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 (Human genome project) 가 완성되면서 한 인간을 구성하는 전체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1996년의 영화 가타카 (GATACA)에서 묘사한 것처럼 출생시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여 알콜중독자가 될 가능성,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할 가능성, 치매에 걸릴 확률 등이 결정된 상태에서 태어나고,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미리 교정함으로써 미래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유전적으로 인간이 초파리에 비해 아주 우월한 종족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human genome을 밝히는데 성공했지만 그 성과는 생각보다 혁명적이지 않았는지, 아직 내 삶과 사고 구조가 별로 변한게 없었다.

인간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갖추었는데, 정작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미래의 대안과 계획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고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과학기술의 승리이다. 그렇게 개발된 지식과 기술을 당장의 현실 응용력이 떨어진다고 사장시킬 수 있겠는가. 아마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그 기술을 암에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Wikipedia - DNA Stub

TCGA (The Cancer Genome Atlas)가 새로운 프로젝트로 가동되었고 2008년부터Nature, Science 등 빅 저널에 암종별 게놈 지도를 밝히는 연구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그에 비례해 검사가격도 싸지고 있다. cancer genome 이 시작되던 시기만 해도 한 사람 유전자 분석에 수개월, 수억원의 비용이 소모되었지만, 요즘은 한 사람 유전자 sequencing 하고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최종결과물을 보여주는데 1달 정도 시간이 걸리고 비용은 천만원 정도 소요된다.

예상보다 테크놀로지 발전 속도가 빨라서 앞으로 3-4년 후면 1주일 안에 이런 검사결과를 알려주고 비용도 100만원 정도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 유전자 지도를 가질 수 있다. 아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이제 환자들은 암이 진단되면 자신의 피와 조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여 어떤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런 유전자 이상과 지금 나의 병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확인한 후 해당 유전자 이상을 복원하는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암치료의 멀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무차별적인 세포독성항암치료는 정상 세포도 공격한다.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가 빠지고 오심 구토로 고생하는 것도 암세포가 아닌 정상세포까지도 공격해버리는 항암제의 특징 때문이다. 병도 나빠지지만 몸도 나빠진다.

이에 비해 표적치료제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덜하다. 그러나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려면 나에게 그 표적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개발된 표적치료제는 몇가지 안된다. 표적치료제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잘 알려진 표적 몇가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방암의 HER2 나 폐암의 EGFR, 대장암의 K-ras, 악성흑생종의 BRAF 등이 대표적인 암 유전자들이다. 그렇게 입증된 몇가지 마커가 아니면 아직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cancer genome 의 시대를 맞이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면 우리 몸 안에 수천개 이상의 유전자 이상이 있음을 알수 있게 된다.

문제는 정상인에서도 유전자 검사를 하면 이상한 유전자들이 발견된다는 것. 누구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 염기서열 한두개가 바뀌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렇게 염기서열이 바뀌고 유전자가 정상이 아니면 그것이 어떤 병이나 암과 연관되는가?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유전자 이상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진 것에 비해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러므로 sequencing을 해서 염기서열을 모두 알아낸 정보(한 사람 앞에 1테라바이트 정도)가 눈 앞에 제시되어도 이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고 환자 상태와 연관시킬 것인지, 그 엄청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할 것이며, 환자이 임상적 상태와 어떻게 적절한 연결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더 큰 과제이다.

그러므로 청진기는 사라지고 컴퓨터를 이용한 통계프로그램으로 병이 진단되며 치료법이 제시될지도 모른다. 이제 의사가 아니라 Bioinformatics 를 담당하는 통계학자의 역할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암 유전체 연구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솔직한 마음으로 마음 속에 어떤 저항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연수 성과들을 실재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에 효과적이고 유용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또 일부 선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몇몇 대학이나 병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기 임상연구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따라갈 길이 너무나 요원하고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갈텐데, 그 유용성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의 암 치료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 무기력감과 실망,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같은 것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봉사 문고리 잡는 것같은 불확실한 근거로 치료하면 안된다. 통계와 평균에 입각해 개별 환자를 다 표준화시켜서도 안된다.

개별화된 맞춤형 의료, 그 대안이 유전체 연구일까? 연구에도 유행이 있고 드라이브가 걸리기 마련인데 지금 대세는 유전체 연구인것 같다. 내 능력으로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뭔갈ㄹ 추진할 수 없으니
배가 아픈 것일까?

공부 많이 하고 마음으로 삐딱선을 탄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들어서 그런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고 내 현실의 상황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줄 알면서
다시 시작하는 작은 영웅이 되어야지.

Katie 가 말한 것처럼.

 

 

이수현 /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임상조교수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사회학을, 그리고 다시 의학을 공부하여 지금은 종양내과 전문의.전공은 유방암. 진료실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문의는 블로그로!
http://bravomybreast.com/
Posted by 가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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